중국역사에서 빼 놓을수 없는 서태후
그런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유명한  이화원 고고씽!!


지금의 이화원은 서태후 여름별장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이화원의 목적은 청나라 건륭제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건륭제가 끔찍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편히 쉬시라고 만들어 놓은것으로 당시에는 칭이위안이라고 불렸으나
1860년 서구 열강의 침공으로 파괴되었고
이후 서태후(西太后)가 실권을 쥐고 있던 1886년 재건되면서 지금의 이화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로 이곳에서 수렴청정을 했던 서태후는 일시적인 피서와 요양 목적으로 건설되었던 이화원에
각종 전각과 사원을 추가해 본격적인 국사를 볼 수 있는 궁전 형태로 변모시켰다.
이화원 재건비용 때문에 청나라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들였다고 하니;;;
말 다했지...

 
더욱 놀라운건 이화원의 총면적의 3/4에 해당하는 곤명호는.... 믿기힘들지만 인공호수라고 한다,,,
실제로 보면 호수라기보다 바다! 같은 느낌인데;;;;;
항저우에 있는 시호를 모방하여 만든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하나하나 흙을파서 인공호수를 만들고...
그 흙으로 저 뒤쪽으로 보이는 인공산인 만수산을 만들었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
뭐든지 뚝딱뚝딱;;;; 헐~


친절한 가이드님께서 서태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더욱 기대되던 이화원
드디어 입장 :)


입구에 작은 다리를 지나..


바로 보이는 거대한 인공호수 곤명호
아무리 봐도 이걸 사람이 직접 흙을 파서 만든거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거대 곤명호에서는 우리나라 한강의 오리배는 없어도 이런 미니배를 타고 유유히 돌아 볼 수가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화원은 사실 하루종일 둘러보아도 정말 다 볼수 없을 정도의 규모!!
일정상 하루종일 돌아볼수도 없을 뿐만아니라 나의 저질체력으론 택도없다며;;


기념사진 작렬! ㅋ

여기서 잠깐~~
이화원의 주인이었던 서태후에 대해서 알아보자!!


청나라 제7대 함풍황제는 첫번째 황후였던 자안(慈安)과 두번째 황후였던 자희(慈禧)가 있었고
두번째 황후인 자희가 낳은 6살난 아들이 하나 밖에 없었다..

함풍황제가 31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고
하나밖에 없는 6살난 아들이 동치황제가 되면서 함풍황제의 두 황후가 황태후가 되었다!
( 자안은 자금성 동쪽에 살고 있었기에 동태후라 불리고, 자희는 서쪽에 살고 있어서 서태후라고 불리게 된다...
서태후가 이름이 아니라는거 가이드님께 처음 들었다는;;; ㅋ)

즉위한 동치황제의 나이는 겨우 여섯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서태후가 수렴청정하기 시작!
(그리하여 28세부터 중국을 통치한 시간이 거의 48년이나 된다고 한다)

6살에 즉위한 동치황제가 17살이 되자 결혼하고 서태후의 수렴청정을 끝내야 했지만,
수렴청정을 끝내기 싫은 서태후는 동치황제의 황후를 핍박하고 둘이서 한방을 쓰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기생집을 드나들던 동치황제는 성병에 걸려 죽게되고;
서태후는 남편을 핍박해 죽였다는 죄명으로 죄없는 동치황제의 황후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또 3살밖에 안되는 광서황제를 자리에 올려놓고 수렴청정을 계속한다
(광서황제는 서태후의 여동생과 서태후의 시동생이 낳은 아들이다.)
후에 광서황제가 19살이되자 서태후와 정치상 충돌이 있었고 광서황제는 개혁을 하려 하다가 서태후에 의해 진압되었고
광서황제는 이화원에 갇혀지내게 된다...
광서황제는 10년간 갇혀 있었으며 1908년 서태후가 죽기 하루전에 서태후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곳이 바로 광서황제가 갇혀지내던 곳인데...
겉으로 보기엔 문이 열리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안에는 겹겹이 벽돌로 사방을 다 막아두었다;;;


이곳은 광서황제의 황후가 갇혀 있던 선예관


안쪽을 들여다보니  황후의 침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다!!

이 다음엔 서태후의 침실 구경도 했으나...
가이드님이.. 서태후의 침실 앞에 있는 패망석이라는 돌때문에 여기서 사진촬영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를 하셔서...
(그 돌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하이라이트는 청나라를 말아먹은 서태후가 그 돌때문이란 썰도;;;)
물론 믿지는 않지만 잠시 카메라를 꺼두었다는;;;

암튼 위에 보이는 광서황제 황후의 침실과 서태후의 침실은 비교도 안된다;;

이 외에도 가이드님께 들은 서태후의 일화는 무궁무진~~~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줄 미쳐 몰랐다며 ㅋㅋ


이곳은 서태후가 호수 주위를 거닐면서 그림감상을 했던 화랑 " 장랑 " 이다
장랑 : 말 그대로 긴 복도;;;

요월문에서 시작해서 석장정까지 모두 273칸이 있고 총길이는 728m로 중국 고전원림 중 최고의 길이다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단다!)


장랑의 대들보에는 인물, 산수, 화초, 조류 등 각종 채색화 8천 여폭이 그려저 있고
장랑중간에는 4개의 8각 처마의 정자가 있다

 
장랑에서 내다 보이는 곤명호의 모습..


저기 멀리  곤명호에 떠있는 것은 바로 섬이다 물론 인공섬;;

그리고 섬을 연결하는 저 다리는 십칠공교로 17개의 아치형 교각과 돌난간 위의 544마리의 돌사자가 조각된
총 150m의 다리로 544마리의 돌사자가 하나도 똑같은 표정이 없단다;;;

이제 좀 그만 놀래야 할텐데;;;;


다시 장랑으로 돌아가.. 나도 서태후처럼 하나하나 그림을 감상하며 거닐어 볼까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을뿐이고;;;

중간 중간 더운 날씨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기념품을 팔거나 아이스크림, 냉수를 파는 장사꾼들도 많이있다.


그리고 뭔가 있어보이시는 분도!!
앞모습을 찍고 싶었으나 어찌나 걸음이 빠르시던지;;;


너무나도 긴 장랑...
끝까지 가보지는 못하고 중간에 류가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되돌아 가기로 했다!


정말 끝이 안보일정도로 길고 긴 장랑
아주 아주 넓고 넓은 이화원을 다 둘러보기란 정말 힘들었고...

마지막으로


서태후가 정무를 보았다는 인수전으로 가는길..


인수란 논어의 인자수에서 나온말로 어진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라고한다.
(서태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

인수전의 원래이름은 근정전으로 황제가 이화원에 머무는 동안 정무를 집행하고 신하들을 알현하는 공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서태후가 정권을 잡은 이후 청나라 정치중심이 자금성에서 이곳 이화원으로 옮겨지면서
인수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되었단다..


인수전 앞의 사불상~!
사불상은 상상의 동물로 용의 머리, 사슴의 뿔, 사자의 꼬리, 말의 발을 가지고 있다


용은 다섯개의 날카로운 발톱을 위로 향하고 있다


정말 정말 거대했던 이화원...
아쉽지만 이제 이화원을 나가는 시간!!

단체관광객부터 개인관광객까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일행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나 국제미아 될뻔 했다는 ㅜㅜ


나오는 문은 이화원의 정문인 동궁문..
처마밑에 광서제가 직접 쓴 이화원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가이드님께 하나하나 설명듣고 관광해서 더욱 도움이 많이 되었고
더욱 즐거웠던 북경 이화원 나들이!!

매번 말하지만 그냥 보는것과 알고보는건 천지차이!!!
오늘도 뼈져리게 느낀 하루 :)

다음엔...
기대되는 만리장성 :)


고고씽의 즐거웠던 북경 여행은 세중투어몰과 함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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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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